마음이 담긴 기부금들  
 
[2009.01.23 17:07]        
 




한푼… 두푼… “사랑의 강물이 흐릅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지하철에서건 길에서건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자꾸만 나에게 돈을 준다. "저, 한비야님 맞죠?" 이렇게 수줍게 묻는 사람에게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면 어느 틈에 주머니를 털어서 긴급구호현장에 써 달라며 돈을 건넨다. 학생들은 몇 천원, 어른들은 몇 만원, 쑥스러워 목까지 빨개지는 중·고등학생들은 껴안아 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다. 이런 학생들에게 나는 번번이 묻는다.

"날 뭘 믿고 돈을 주니?"

"월드비전이잖아요"

"우리나라에도 도울 사람 많잖아?"

"급하다면서요. 급한 사람부터 도와야죠" 한다.

한번은 지하철 안에서 예쁘장한 여대생에게 6만원을 받았다. 자기 생일날, 자기에게 주는 선물로 벼르던 반코트를 사러 백화점 세일장으로 가다가 날 보고는 그 돈을 톡톡 털어주는 거였다.

"반만 내도 되는데…."

"아니에요, 비야 언니. 내 마음을 고스란히 드리고 싶어요. 기도할게요."

놀랍다. 내가 이 학생들만 했을 때는 반강제로 걷는 불우이웃 돕기 말고는 자발적으로 돈을 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누굴 어떻게 믿고 아까운 돈을 내느냐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기특하면서도 신기하다.

며칠 전에도 중년의 택시 운전사가 한사코 차비를 받지 않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무리 없어도 8000원은 보탤 수 있어요. 그 돈이면 아프리카에서 한 식구 며칠간 식량을 살 수 있다면서요?"

이런 반응 역시 놀랍기만 한다. 내가 일을 시작했던 때만 해도 우리나라에도 힘든 사람 많은데 왜 외국까지 돕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고 해외구호활동에 대한 달갑지 않은 눈총도 받을 만큼 받았다. 그런데 그동안 세상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멋지게 변한 거다.

흔히 한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나누는 일에 인색하다고 말한다. 솔직히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난 8년간 세계 재난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구호활동을 위한 모금의 최전선에서 일하면서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정이 고품질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재난 현장의 상황을 생생히 전하고 그곳에서 뭐가 제일 필요한지 제대로 알리기만 하면 후원의 손길이 불같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아궁이처럼 오래간다는 것도 알았다.

물론 후원은 돈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시간과 힘이 있는 사람들은 노력 기부로, 번역이나 웹디자인 등 전문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재능 기부로 후원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형식의 기부든 남을 도울 때는 기껍고 간절한 마음, 기독교식 표현으로 하자면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담아 하는 것이 후원의 기본이고 원칙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기본을 제일 잊기 쉬운 것이 금전 후원이다. 직접 몸으로 해야 하는 노력 봉사나 재능 봉사에 비해 금전 후원은 전화나 은행자동이체 등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 있다 보니 처음 후원할 때의 간절함과 설렘이 얼마 가지 않아 기계적이고 습관적인 후원으로 변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친구들에게 적어도 통장 정리하는 날에는 그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후원금으로 후원하는 아이의 이름과 나라를 큰 소리로 불러가며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사실은 내가 이렇게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후원금으로 일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다. 그래야 힘이 나고 신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야 돈의 힘이 아니라 사랑의 힘으로 일한다는 자부심과 자긍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지난주 칼럼에서 말했듯이 구호요원은 목숨을 걸고 일한다. 현장에서 아무리 구호자금이 필요하지만 '마음이 담뿍 담겨 있지 않은 돈'으로 일하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알다시피 인질로 잡혔을 때 우리 단체 구호요원의 몸값은 0원이다, 아니 아예 몸값 협상조차 하지 않는다. 납치세력이 식량이나 의약품을 원하면 무엇이든 들어주지만 인질 석방의 대가로 돈을 요구할 때는 절대로 응하지 않는 게 대원칙이다. 우리 후원자가 한푼 두푼 모아준 후원금으로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는 건 옳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돈을 받은 세력들의 힘이 점점 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몸값도 없는 우리들이 어떻게 재난 현장에서 몸이 으스러지는 줄도 모르고 미친 듯이 일할 수 있을까? 그건 길에서 수줍게 돈을 건네는 학생들처럼 구호자금과 함께 뜨거운 사랑과 기도까지 보내주는 우리 후원자들 덕분이다. 아닐 리가 없다.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아프가니스탄 현장으로 떠나기 직전, 한 아이에게 받은 카드와 꽉 채운 저금통이 생각난다. 카드에 적힌 사연은 기도문 형식이었다.

"사랑하는 하나님, 이제 저는 그만 돌봐주시고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을 많이 돌봐주세요, 꼭이요."

글씨체로 봐서는 유치원이나 다닐 만한 아이가 사랑이 넘치는 간절한 기도와 함께 자기의 전 재산이었을 저금통을 통째로 보낸 것이다. 이 꼬마 후원자가 사랑하는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을 팔아 구제하고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속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멘.

<월드비전 국제구호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