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7/09 좋은교회 송년주일 설교
“광야길을 걷게 하신 하나님”
신명기 8:1-4
1.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림을 그리는 한 엄마가 있었습니다. 그 엄마는 그림을 그릴 때면 언제나 애들을 같이 데리고 가서 자연을 벗 삼아 놀게 하고 그림 그리는 것을 보게 했습니다. 하루는 그림을 그리러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오늘은 평화를 그릴 예정이다. 그러니 잘 놀고 있어.”
엄마가 그림을 그려 나갑니다. 바다를 그렸는데 평화롭고 잔잔하 바다가 아니고 파도치는 바다를 그립니다. 아이들이 하나같이 말합니다. “엄마 이것은 평화로운 바다가 아니잖아요? 파도치는 험난한 바다는 전혀 평화롭지 않아요.”
엄마가 대답합니다. “얘들아, 조금 기다려 봐라! 평화로운 바다를 그릴 것이니”
그리고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갑니다. 이번에는 파도 속에서 금방 뒤집힐 것 같은 배를 그립니다. 금방 뒤집힐 것 같은 배를 보고 더욱 애들은 불안해합니다. “엄마! 그 배가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 같은 게 더 불안하기만 하고 전혀 평화롭지를 않아요.“
“그래? 그럼 좀 더 기다려 봐라! 그 파도 속에서도 평안과 평화가 올지 누가 아니?”
다음엔 선원들과 승객들을 그립니다. 그런데 거친 파도 속에서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 같은 배 안에서 그 선원과 승객들은 한 없이 평화로운 모습으로 앉아있습니다. 애들은 이상하다는 듯이 엄마에게 또 묻습니다.
“엄마! 어떻게 저 파도 속에서,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 같은 배에서 선원과 승객들이 저렇게 평안한 모습으로 앉아있을 수 있지요?“
“글쎄, 왜 그럴까? 조금 더 기다려봐라!”
엄마는 그림을 더 그려갑니다. 마지막으로 엄마가 그린 그림은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 같은 배의 키를 잡고 있는 선장의 모습이었습니다. 선장의 얼굴은 자신감과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그 선장의 모습을 이상하게 보고 있던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얘들아, 이 선장이 누군줄 아니? 바로 하나님이시란다. 너희의 인생이 이 그림 속의 풍랑 같아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너희 인생의 선장 되신다면 아무리 어려운 파도가 와도 이 선원들과 승객들처럼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단다.”
초등학교 시절 봤던 한 그림이 생각이 납니다. 이야기에 나온 엄마가 그린 그 그림처럼, 큰 풍랑 속에서 흔들리는 배의 키를 잡고 있는 한 사람의 등 뒤에서, 그를 살며시 안으시고 함께 배의 키를 잡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이었습니다. 그 인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과, 거친 풍랑에도 평안함이 묻어 나오는 그 사람의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그림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 그림속의 사람처럼 저도 꼭 안아주세요.”
어린 저의 그 마음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셨나 봅니다. 2001년 여름 이스라엘 히브리대학에서 여름집중강좌를 들었습니다. 매일 수업이 끝나고 점심을 먹으러 들리던 구내식당이 있었습니다. 학기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수십일동안 들락날락하던 그 구내식당이 폭탄테러를 받아 완전히 폐허가 되고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뉴스였습니다. 며칠만 더 머물렀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생각하니 끔찍했습니다. 보스톤에서 사역하면서 성도님들 라이드를 참 많이 했습니다. 큰 교통사고로 차가 두번이나 폐차가 되었습니다. 차는 폐차가 되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상처 하나 입지 않았습니다. 그냥 운이 좋았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분명히 압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서 저를 지켜주셨음을 저는 분명히 압니다.
믿는 자에게 우연은 없습니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일어나는 필연입니다. 이 땅 가운데 만나는 모든 어려움과 풍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연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필연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무서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지키리라.”
오늘은 2009년도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맘때가 되면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게 됩니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기뻤던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즐거운 순간들이 있는가 하면, 슬퍼 엉엉 울었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열려진 길 앞에서 신나게 걸어갈 때가 있는가 하면, 사방의 길이 막혀 답답해할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예배를 드리는 이 순간에도 풀리지 않은 여러가지 문제로 우리의 마음이 무거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은 하나님 앞에서 필연입니다. 크신 하나님의 계획하심 속에서 우리에 주어진 하나님의 필연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들 가운데 말씀하십니다. “무서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지키리라.”
한국을 떠나 이곳 보스톤에서 사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아주 딱 맞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약속의 땅을 향해 40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그 뜨거운 광야에서 생활했던 이스라엘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낯설고 물설은 곳에서 긴 세월을 참고 견뎌야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때면,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을 떠나 언어와 문화가 틀린 이곳에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참 불쌍해 보입니다.
하루하루가 광야와 같습니다. 시원하게 물을 마실 곳도 없고, 배불리 먹을 양식도 없습니다. 일년이 멀다 이삿짐을 싸야하고 추운 난방비 걱정에 따뜻하게 겨울을 나기도 어렵습니다. 열심히는 사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일들은 계속 터지는지, 왜 이렇게 아픈 식구들은 많은지,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고 시원하게 울어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자식 위해서 내 젊은 인생 다 바치고 있는데, 이 녀석들이 속을 썩입니다. 부모를 몰라도 너무 몰라줍니다. 내일을 생각하기에는 오늘 하루가 만만치가 않습니다. 미래도 생각하기에는 오늘 막아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내가 왜 이곳에서 이 생고생을 하고 있는 것인지, 하루에도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수도 없이 합니다. 한국에 살림거리가 있으면 그나마 기댈 곳이 있다 위안이 되지만, 모든 살림 다 정리하고 큰 맘 먹고 오신 분들은 그런 위로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광야와 같은 이 생활. 뜨거운 태양빛에 목은 마르고 피부는 거칠어지기만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동일한 말씀을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 한번 더 읽어봅시다.
1.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광야생활이 우연인줄 알았습니다. 아무 이유없이 이 고생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 앞에 우연은 없습니다. 이 힘든 광야생활조차도 하나님께는 필연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계획
속에서 우리로 하여금 그 광야길을 걷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필연이라 하면 목적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광야생활을 하신데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 목적을 세 가지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째, 오늘 본문에 두번에 걸쳐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무엇입니까? 우리를 낮추시기 위해서 광야생활을 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우리가 교만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교만하십니까? 제가 보기에 이 자리에 앉아계신 분들 중에 교만함으로 목이 뻣뻣하고 나 잘났다 하시는 분은 한분도 없습니다. 다들 겸손한 분들이십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낮추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교만과 하나님이 보시는 교만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좀 있는체 하고 아는체 하고 다른 사람 무시하는 사람을 보면 교만하다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만 보십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필요로 하고 있는가 아닌가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의 교만은 바로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음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는 것이 교만입니다. 아무리 인간적으로 겸손하고 다른 사람을 높이는 사람도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을 구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교만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겸손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라도 그 마음 속에 자기 자신으로 꽉차 있으면 그것은 교만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혹시 그 교만함은 없습니까?
광야생활은 의지할 자가 필요한 곳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민생활 가운데 사람 의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게 귀한 도움 주시는 분들, 참 감사하지요. 하지만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정말 의지했던 사람이 내게 가장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그럼 누구 의지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이 광야길을 걷게 하신 그분,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그분,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그분, 그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한국에서 사는 꼴을 보니 날 만나기는 힘들겠구나 하시면서, 이 광야로 몰아가셔서 하나님 찾게 하시는 그분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분만을 신뢰하고 그분의 도움만을 구할 때, 우리는 우리의 보이지 않는 교만을 이기게 됩니다. 하나님께 겸손한 자로 인정받게 됩니다. 나를 낮추시고자 광야길을 걷게 하신 그분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번째,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로 광야생활을 하게 하시는 것은 우리를 테스트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테스트하시는 것일까요? 단순히 우리의 인내를 시험하시는 것일까요? 어디까지 네가 참을 수 있나 한번 보자 하시는것입니까? 그럼 우리의 능력을 시험하시는 것일까요? 일종의 무한도전입니까? 아닙니다.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I wanna test you to know what is in your heart, whether or not you will keep my commandments.” 한마디로 하면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신뢰하고 그분의 뜻대로, 믿음으로 살아가느냐를 테스트하신다는 것입니다.
지난 일년동안 하나님께서 여러 시험문제를 여러분에게 주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고, 여러분들이 과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아닌지를 아시고자,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아닌지를 아시고자 여러 시험문제를 주셨을 것입니다. 때로는 시험의 모습으로, 때로는 여러 유혹의 모습으로 여러분들을 테스트 하셨을 것입니다. 그 때는 몰랐는데, 돌아보면 깨닫습니다. 아, 그것이 하나님의 테스트였구나. 지난 일년동안 이 하나님의 테스트에 몇점을 받으셨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당하는 모든 어려움들은 나의 믿음을 측정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테스트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 시험 앞에서 주님께서 보고 싶으신 것은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인간적인 잔꾀가 아닙니다. 믿음으로 행하십시오. 믿음으로 당당히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하십시오. 그 시험을 통과할 때마다 우리의 믿음의 지경을 넓혀주시고 장차 더 큰 사명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실 것입니다.
세번째, “너로 주리게 하시며”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광야로 내 모신것도 원망스러운데, 그 목적이 배고프게 만들기 위함이라니요. 왜 하나님께서는 너로 주리게 하기 위해 광야길로 인도하셨다 하시는 것일까요? 그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백년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애굽의 문화와 애굽의 음식에 길들여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기름진 고기와 맛난 음식들에 익숙해있던 자들이었습니다. 풍성한 먹거리로 배고픔을 모르던 자들이었습니다. 최소한 육신적으로 그랬습니다. 그들은 육신은 그러했지만, 그들의 영혼은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육신의 배고픔은 채울 수 있었지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영적인 배고픔을 채울수는 없었습니다. 아니 그 영적인 배고픔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방땅에서 그들이 던져주는 고기와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으로, 그렇게 그 종살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살던 자들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 족장들의 이야기는 먼 옛날 이야기일 뿐, 자기들의 현실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라 여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광야로 불러내 주셨습니다. 육신의 배부름만 알던 그들에게 영혼의 배부름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불러내셨습니다. 세상에 종살이하며 현실에 타협해사는 그들을 안타까와 하시면, 너는 내 백성이란다. 너는 내 아들과 딸이란다. 너는 있을 곳은 애굽이 아니야, 세상이 아니야.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한 땅이 있단다. 내가 갈 곳은 바로 그곳이란다.” 그들을 마침내 광야로 이끌어내시고 그들이 평생 맛보지 못한 만나를 맛보게 하셨습니다.
만나는 육신의 양식이 아닙니다. 만나는 하루만 지나면 썩었습니다. 만나는 일용할 양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용할 양식이 바로 그들의 영혼의 양식이 되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왜 우리들을 이곳으로 부르셨습니까? 내가 익숙하고 내가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는 조국을 왜 떠나게 하셨습니까? 바로 이 만나를 맛보게 하기 위해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단순히 조국 대한민국이 아닙니다. 내가 육신의 만족만을 생각하며 살던 이 세상에서 우리를 불러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사건입니다. 단순히 비행기타고 이 땅에 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내가 종살이하던 이 세상에서 완전히 떠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요? 육신의 만족이 아닌, 영혼의 만족을 맛보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이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민생활 속에서 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제 평생에 가장 말씀의 은혜를 많이 받은 때는 군대에서였습니다. 왜요, 말씀 밖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때 주신 말씀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선교사 시절 홀아비 생활할때, 그리고 이곳 보스톤에서 목회하면서 주시는 말씀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요. 이 만나를 항상 사모하시면서 살아가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믿는 자에게 우연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필연입니다. 나를 이곳으로 불러주시고 여러 어려움들을 겪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필연입니다.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무엇 때문이라 하셨습니까? 1. 나를 낮추시기 위해서, 2. 나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서, 3. 그리고 영의 음식, 만나, 그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이곳으로 불러주셨습니다.
목적이 있는 이민생활이라면, 그 목적대로 살아갑시다. 주님 앞에 더욱 겸손하여집시다. 모든 순간 순간 주님을 의지합시다. 모든 일에 믿음을 잃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갑시다. 육신의 배부름보다 영적인 배부름을 사모합시다. 내가 큰 풍랑이 다가온다해도 두려워하지 맙시다. 나를 광야길로 인도하신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면, 이 광야길 가운데서 나를 지키시고 인도하실 분도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의 키를 누가 잡고 있습니까? 혹시나 몰려오는 풍랑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두려워 떨며 그 키를 내가 붙잡고 있지 않습니까? 그 인생의 키를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의 떨리는 어깨를 감싸게 내어 드리십시오. “하나님, 나도 저 그림의 사람처럼 꼭 안아주세요.” 주님이 안아주시면 됩니다. 이 풍랑 속에서, 이 뜨거운 광야 속에서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깊은 평안을 누리실 것입니다.
기도하십시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지난 2009년도를 돌아볼 때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아픈 일들, 고통스러운 일들, 괴로운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 모든 일들 가운데서 저희들을 구하시고 지켜 주신 주님, 참 감사드립니다. 뜨거운 광야생활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깊이 체험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저희들도 이곳에서의 생활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게 하소서. 주 앞에 더 낮아지고, 믿음으로 모든 시험을 이기며, 영의 배부름을 얻는 복된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마침내 주님께서 약속하신 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이 광야길을 당신과 함께 기쁨으로 걷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